죽은 이의 유언도 입맛대로 바꾸는 신문들
2007/05/21 09:30얼마전에 동화작가로 유명하신 '권정생' 씨가 유명을 달리한 일이 있었다. 사건이랄 건 없지만 사건이라고 해두자.
'권정생' 이라는 이름은 내게 전혀 생소했지만 그의 작품인 '몽실언니' 나 '강아지똥' 같은 경우엔 인지도가 있었기 때문에, 아 그런 책을 쓰셨던 분이 돌아가셨군,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아마도 이 분이 일반 문학 작가 그룹과는 약간 구별되는 민족문학 작가 들과 친분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런 연유 였는지 유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인세를 굶주린 북녘의 어린이들에게 우선 쓰고, 남는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세계의 굶주린 어린이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사건을 보도하는 신문들의 태도이다.
가장 먼저 이 현상을 발견한 건 동아일보 였는데, 동아일보는 일단 다음과 같이 이 '사건'을 전하고 있다.
“어린이 위해 인세 써달라” 故권정생 씨 유언 남겨
입력2007.05.19 03:01
17일 세상을 떠난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사진) 씨가 어린이들을 위해 인세를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권정생과 함께하는 모임’ 회원이자 장례위원인 최윤환 씨는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 줘야 한다.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자택에서 발견됐다”고 18일 밝혔다. 최 씨는 “유서에는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시신을 화장해서 집 뒷산에 뿌려 달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면서 “고인의 생전 삶의 철학이 마지막 남긴 글에도 그대로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5190095
동아일보는 고인의 유지를 전하는 기사에서 <북녘>이란 말을 빼놓고 있다. 물론 유서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도 언급되어 있으므로 뭉뚱그려 '어린이'란 표현을 썼을 수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판단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검색 결과를 알려드리고 싶은데...
네이버에서 여러 언론들에 실린 관련 뉴스를 검색한 결과, 권정생씨의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다음과 같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북녘의 어린이' 혹은 '북한 어린이' 라고 기사를 내보낸 언론]
- 경향신문
- 서울신문
- 연합뉴스
- MBC
['어린이' 라고만 기사를 내보낸 언론]
- 문화일보
- 동아일보
- 국민일보
- 조선일보
(중앙일보엔 관련 기사가 게재되지 않았음)
문화일보의 경우엔 '이땅의 어린이' 라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데, '이 땅의' 라는 표현은 즉시 우리나라(대한민국)의 어린이를 떠올리는 표현이고 기사 내용에서는 '북한의' 란 말을 뺐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분류했다.
어쨌거나, 기사 하나로 분류해 보았는데.... 대충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 -_-
신문들, 기사 하나하나 마다 자사의 편집 의도 나타내는 건 문제될 일 없겠지만 말이지...
죽은 사람의 유언은 있는 그대로 내보내 주는 게 예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