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길에서 : 눈을 들면 보이는 것

2010/04/29 01:03


처음 올레길 여행을 시작한게 벌써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잘 정리해서 올려야지, 하며 홈페이지에 사진들을 올려놓은게 지난 2009년 3월 10일.

아마도 사진이 멋진 만큼 아주아주 멋진 글을 덧붙여야지, 하는 생각에 오히려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나 보다.


이젠 더 미뤄두기도 뭐해서 그냥 올리는 올레길 여행 특집 사진전.

올레 1, 2, 3 코스 를 돌며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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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리 혼인지 근처의 민박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



지금은 어떻게 된 사정인지 기억이 좀 희미해졌는데, 아마도 여행의 첫 날이 12월 31일 이어서 성산에 숙소 예약을 못해서 였던 듯 하다. 매년 1월 1일은 성산 일출봉에서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무진장 모여들기 때문에 (하지만 나중에 성산포 앞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3년째 1월 1일엔 날씨가 흐려서 누구도 일출을 못봤다고) 숙박이 힘든데다가 숙박비도 특별요금이라는 말에 3코스 끝나는 지점의 민박집에 숙소를 잡은 이유로 좀 엉뚱하게도 3코스 -> 2코스 -> 1코스 의 순서로 올레길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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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스 어디에선가 찍은 눈 맞은 배추밭


남들과 달리 어찌하다 3코스에서 올레길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이란 말에는 실수, 시행착오, 혼동 같은 말들이 포함되어 있는 거라서 일일이 실수담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테고, 마침 제주도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상황 - 해안가에 쌓일 만큼 눈이 오는 - 을 만나게 되었는데, 춥거나 한 것은 문제가 안되었는데 치명적인 한가지 문제점을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올레길은 길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가야 하는데, 눈이 쌓이는 바람에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던 것.

다행히 화살표 외에 나뭇 가지에 매어놓은 리본들도 있고, 또 앞장서 걸어간 이들의 발자국이 있어서 큰 탈 없이 길을 찾아 갈 순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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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넉넉히 내리쬐던 성산포 앞 민박집에서



첫날 여행을 끝내고 숙소를 성산포 앞 민박집으로 옮겼다. 전날 머문 숙소는 민박이라곤 해도 여관이나 펜션같은 숙박업소의 느낌이라면, 1, 2 코스를 다니던 이틀동안 머문 성산포 앞의 민박집은 일반 주택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식사도 주인집 거실에 사람들이 다 모여서 먹는 곳이었다. 사실 몇 번이나 제주도 여행을 했지만 한번도 현지 주민이 직접 하는 민박집에서 자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좀 걱정을 많이 했다. ( 생각해보니 제주도 아닌 다른 곳에서도 민박집에서 잔 적이 거의 없군)

내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넉살좋게 먼저 친해지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어서 어떨까,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왠걸 걱정한게 우스울 정도로 좋은 민박집 아주머니 덕분에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기억을 남기고 돌아왔다. 5천원짜리 밥상에 나온 갈치 조림은 내가 이제껏 제주도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고 실한 갈치 조림이었다. 민박집 아저씨는 오후 나절에 동네로 잠깐 낚시 다녀오신다더니 1미터는 족히 되는 민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를 잡아다가 제주도 특유의 방법으로 손질된 데친 회를 내주셨다. (회를 먹은 것보다 대체 동네 앞바다 어디서 저런 물고기를 잡아오시는 거지 하고 놀랐던 게 더 기억에 남았네) 비록 진한 제주도 사투리를 쓰시는 바람에 말을 절반정도는 못알아들었지만, 나처럼 인간관계에 약한 사람도 여행의 절반은 사람이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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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필요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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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스 어디에선가... 멀리 보이는 곳은 성산포, 가까이 보이는 것은 성산 읍내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가까이서 보면 가까운 대로, 멀리서 보면 먼 대로, 동쪽도 서쪽도 땅도 하늘도 모두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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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5에서 2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걷는 일이 그렇게 가벼운 일은 아니다. 숙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쉬고 밥먹고 하며 걷는 시간으로 적게는 5시간 많게는 8시간도 걸리는 일이다. 그것도 하루만으로 끝내지 않고 이틀 사흘 계속 걷다 보면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약간 무덤덤해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면 얻는 것은 오랫동안 내 몸을 움직여 보는 경험을 얻는 것, 동행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계속해 보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과 여유를 갖는 것, 그리고 무언가 한단계씩 이루어 갈 때 얻는 성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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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최고의 풍경 다섯손가락 안에 포함해도 좋을... 근데 어딘지 좀 가물가물 하다 1코스 말미오름일 가능성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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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 거의 끝나는 지점. 성산갑문 지나기 전

 

1코스의 핵심은... 옥빛 바다와... 준치 ㅎㅎ 반건조 준치 무척 맛있다. 꼭 먹어보아야 할 맛...(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좀 작은 오징어를 준치라고 한단다. 혹은 좀 작은 한치 일 수도... 제주 사람에게 들은 말인데, 좀 신뢰가 안가는 (서울화된) 제주 사람이라)



눈치가 있으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이번에 정리한 사진들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사진에나 일출봉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제주도를 여행할 땐 으레 제주 어디서나 한라산이 보인다, 라는 상식을 머리 속에 담고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제주도는 넓고 날씨의 변화가 심해서 연무라든가 구름에 가려서 한라산이 안보이는 때가 많다. 그에 비해 제주의 동부를 여행할 때는 왠만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일출봉을 볼 수가 있다. 일종의 정신적 지주 같은 위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길을 걷다가도 어디서든 고개만 들면 일출봉이 보인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 같은 느낌을 준다. 동네 주민들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멀리 놀러가든, 대취해서 비틀거릴 때도 일출봉만 찾으면 아, 우리집은 저쪽이구나 하고 단박에 알 수 있을테니까.






2010/04/29 01:03 2010/04/29 01:03
by 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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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l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05/04 08:18
    얼마만에 올리는 포스팅인가! =ㅂ=
    그것이 더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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