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책
아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김난주가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 (원제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제는 절판되서 새 책으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책이다.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던 것처럼, 초기에 출판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일각수의 꿈'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었다.
하지만 출판되고 얼마 되지 않아 (혹은 내가 읽은 지 얼마 안되서 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제목을 붙인
다른 번역본이 이제는 거의 하루키의 책을 독점 출판 하다시피 하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면서부터
'일각수의 꿈'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했던가. 김진욱이 번역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보다는
김난주가 번역한 '일각수의 꿈'이 내 편에서는 더 오롯이 글의 느낌을 전해준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명확하게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듯 하다.
게다가, 이 책으로 말할 거 같으면 내가 처음으로 읽은 하루키의 책이었으므로, 새끼오리가 처음 본 사람을
제 어미로 각인하듯 아 이런 표현의 방식이 하루키의 방식이구나, 하는 일종의 각인이 내 머리속에 새겨진
건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샴 쌍둥이처럼, 내 머리속에선 하루키와 김난주가 한몸처럼 붙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해서 그닥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던 97년의 어느
방학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로 검색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서 읽었을 만큼 푹 빠져
있었더랬다. 그런 일련의 기억의 시작이 바로 김난주 번역의 '일각수의 꿈'이었으므로, 다른 책들에 비해
남다른 애정이 있었는지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식은 다음에도 가능하면 어디선가 이 책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까 혹은 구해서 소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주에 우연히 이 책을 구하게 된 것이다. 오랜동안 유일하다시피 마음속에 담고 있던 '그 책' 이므로
얼마간은 감정적이 되어서 장황하게 글을 쓰는 내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무언가 마음 속에 소중한 것
하나 정도는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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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북
2009/05/20 01:26
2009/05/20 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