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감상평 : 나는 사이코패스일까.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심~! ^^
우선은 나도 <추격자>가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영화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룬 현재에도 이처럼 진지하고 강력하게 장르 영화의 틀을 만들어 가는 영화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서라도, 영화를 보고난 후에 놀라웠던 점은 의외로 사람들이 강한 감정의 동요, 불편함,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여자들의 반응이 더욱 컸다.
이들의 반응에 비해, 나는 <추격자>를 보고난 후에 처음 든 생각이 "집에 갈 때 사발면 사가야지" 였다. 영화 내용 중에 여자아이가 사발면 먹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며 먹고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감정적 동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내가 무섭고 잔인한 영화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일부는 맞는 얘기일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는 되지 않는다. <추격자>보다 무섭고 잔인하고 인간의 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영화는 얼마든지 많지 않았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어떤 캐릭터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감정 이입을 하느냐의 차이가 아니었나 싶다. 강한 감정적 저항을 느낀 사람들은 아마도 피해자인 '미진'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 사로잡혀서 둔중한 흉기에 위협받고, 살기 위해 몇시간이고 몸부림 쳐야 했던 그 강한 공포의 감정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도 결국, 살인자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해당하고 마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절망으로 바뀌고서야 끝나는 전개는, 관객의 입장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자 할 때 (영화에게) 배신당하므로써 더욱 큰 감정의 골짜기로 떨어지게 되는 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마지막 미진의 살해 장면이 미진의 시점에서 살인자를 비춰주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도 관객들이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할 수 있다. 살인자의 망치에 엉겨붙은 머리카락, 망치를 내려쳤다가 들어올릴 때마다 뒷 벽에 튀는 방울 방울의 피 같은 디테일 묘사 역시 공포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나처럼) 감정적 변화가 특별히 없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았거나 지영민(살인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게 아닐까. 나의 경우는 방관자, 엄중호, 지영민의 캐릭터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깊이 감정이입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지영민이 미진의 머리에 정을 박아넣으려고 할 때도 그저 "아 저게 한번에 깨끗하게 들어가나?" 하고 생각한다든가, 슈퍼에서 처음 장도리를 건네 받을 때도 "저거 어느 쪽으로 내리칠까?" 하고 생각했으니 아마도 조금은 살인자 쪽에 더 기울었던 모양이다. 영화는 지영민의 감정에 대해서는 사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감정적 고양이 이루어지지 않은게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 때문에 영화를 보고 온 직후 보다, 사람들의 평을 읽으면서 조금씩 '아 나도 혹시 사이코패쓰 쪽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딘가에 가서 말한 바 처럼,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인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자였으면 아무래도 피해자 쪽으로 기울었겠죠.)
어쨌거나 이런 특징도 <추격자>가 강한 캐릭터의 힘을 가진 영화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각 캐릭터에 생명을 부여한 김윤석, 하정우의 연기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고.
 못 뽑는 쪽을 사용하면 더 효과적이겠다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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